아람 군대가 엘리사가 있는 도단을 에워쌌지만 하나님은 사환의 눈을 열어 불 말과 병거를 보게 하십니다. 반면에 아람 군대는 눈이 어두워져 무방비 상태로 사마리아로 끌려갑니다.
[ 열왕기하 6:15 - 6:23 ] (찬송366장)
15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16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18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19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그들을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20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눈을 여시매 그들이 보니 자기들이 사마리아 가운데에 있더라
21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하니 22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 하는지라 23왕이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그들이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8-20절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한순간에 모든 것이 역전됩니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잡기 위해 도단을 포위한 아람 군대의 눈을 멀게 하십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그들은 엘리사의 인도를 받아 무방비 상태로 적진의 중심부인 사마리아까지 끌려옵니다. 엘리사의 기도로 눈이 열리고 나서야 포위된 사실을 알고 전의를 상실할 만큼 큰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형세의 역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기도하는 엘리사’보다 즉각적인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5:8)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을 없는 것처럼 업신여기다가 침몰 중인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주권자로 삼지 않는 나를 이 세상에서 건져주고 건사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5-17절 밤사이에 아람 군대가 도단을 에워쌌지만 하나님의 군대가 엘리사를 보호하기 위해 이미 도착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를 보지 못하는 사환은 겁에 질려 엘리사를 찾아 아람 군대에게 포위된 상황을 전합니다. 하지만 선지자의 기도가 응답되어 사환의 눈이 열리자 그는 비로소 엘리사를 둘러싼 하나님의 군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크신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눈앞에 펼쳐진 감당하기 힘든 일보다 주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것이 훨씬 크고 뛰어나다는 것을 믿고, 생각을 마비시키고 거룩한 상상력을 위축시키는 두려움을 떨쳐냅시다.
21-23절 이스라엘 왕은 공격 여부에 대해 거듭 엘리사의 허락을 구합니다. 그들의 처분은 왕의 조급한 기대가 아니라 엘리사의 명령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무방비상태인 그들을 치기보다는 잘 대접하여 무사히 주인에게 돌려보냅니다. 나아만의 예물을 거절하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던 게하시처럼 이스라엘 왕도 이런 처사가 불만스러웠을지 모릅니다. 예상을 깨는 자비와 선대는 당장의 승리가 아니라 아람의 전쟁 의지를 꺾었고, 얼마 동안의 평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은혜 없는 자리에 남는 것은 칼의 복수뿐입니다. 세상이 교회에서 다른 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은혜여야 합니다.
기도
공동체-제 눈을 열어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불 말과 불 병거를 보고 더욱 힘을 내게 하소서. 열방-2023년 한 해 동안 인도에서 반기독교 폭력(거짓 고발, 체포, 위협 등)이 601건이나 발생했다. 인도의 그리스도인들이 핍박과 박해를 견디며 타종교인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