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이같은 행동은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목사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라면 모두 그렇게 알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곧 예수님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가를 바로 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가장 최고의 피난처로, 방패로, 나를 건지는 자로, 요새로, 인자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누가복음 7장에 보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리아와 비슷한 행동을 한 여자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고 있었을 때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집아 앉아계시는 예수님의 뒤로가서 그 발 곁에서서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 씻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이 때에도 가룟 유다와 같은 인간이 등장하여 그 옥합을 깨뜨린 것을 꾸지람하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의 행동을 칭찬하며 그녀에게 네 죄사함을 얻었노라고 말하셨습니다.(누가복음 7장36-50절)
바로 이 여자는 그 동네의 창녀(?) 였습니다. 그녀의 이와 같은 행동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비난하며 죄있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면서 예수님까지 비난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으로 볼 때, 죄인된 그녀가 세상의 눈총과 세상에서 버림받고 세상에서 가장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을 진정으로 안 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을 한 것을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이와 같은 행동을 하신 것을 칭찬하고 계신 것을 잊어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있은 것을 자꾸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 마시고 살아가도록 합시다. 그리고 가룟 유다와 같이 가난한 자 핑계대며 뭔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면되는 것처럼 여기지 마시고 예수님을 믿는 일,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일 외에 더 이상 중요시하지 맙시다. 진정 우리의 관심은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자는 성도들입니다. 마치 시편 144편에서 세상에서 가장 쫓기는 신세가 되어 본 사람, 버림 받아 본 사람, 예수님 때문에 환란을 당한 사람, 이런 자만이 주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방패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