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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본질(2)

본문 말씀

요한복음 15:1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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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한모금

구약시대에는 형식과 틀을 가지고 설명합니다. 예컨대, 성전, 제사의식, 안식일이나 절기, 직임 등입니다. 다 몽학 선생입니다.그림자입니다.참이 아닙니다.그러한 모든 것들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저하는 전주곡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에서 주어지는 모든 형식과 틀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비추어 이해해야 합니다. 물론 이 말이 모든 형식과 틀, 외적인 것들을 모두 부정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형식과 틀, 조직과 제도 이러한 것들은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폐기될 뿐입니다. 필요하지도 않는데 만들어서 그것에 얽매이고 실족함으로 그리스도를 가리게 할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요13장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자신의 죽음을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들의 구원을 마련하는 것이고, 그 구원은 곧 성령님을 통해서 구원의 열매가 맺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내 아버지는 그(구원을 이루는) 농부라" 는 뜻입니다.아멘.

그런데 15장에 와서 왜 예수님이 갑자기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1절)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참 포도나무라고 하실 때에는 가짜가 있음을 전제하고 하시는 말씀입니다.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말씀하신 적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포도나무가 포도나무의 역할, 즉 열매를 맺는 일을 제대로 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사5:2;렘2:21;시80:8). 그래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극복하러 오신 분이 예수님이요 그분이 참 이스라엘로 참 포도나무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농부되신 하나님께서는 참 포도나무로 "다 깨끗하게 하시느니라"(2절) 말씀한 것입니다. 따라서 참 포도나무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심판하실 것입니다.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은 참 포도나무의 "가지"가 되도록 농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 농부의 농사법은 열매를 맺게하는 법을 사용합니다.

그 법은 사랑의 법이요,구체적으로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13절).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가 곧 참 포도나무의 가지라는 것입니다.그러나 인간이 주님을 자발적으로 사랑할 수 없다는 데 구원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결코 인간이 할 수 없습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그 다음 말씀들을 통해 만세를 부르지 않을 수 없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26절에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즉 구약의 이스라엘을 통해 보여주신 것은, 인간은 늘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할하고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주님을 섬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아버지의 농사 법은 구원의 열매를 맺는 나무로 바꾸시는 법입니다.그 법을 믿는 것이 "참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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