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죽어서 그 민족을 유익케 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것이 이 공회가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정에 대해서 요한복음 기록자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민족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되게하는 죽음을 미리 말한 것이라고 해설기사를 붙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공회원들이 판단은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두려워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만일에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면은, 메시야는 유대인의 왕이면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왕은 어떤 왕입니까? 이방의 권세로부터 자기 민족을 해방시키고 그리고 다윗 때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민족의 중심이 되었든 것처럼 이제 메시야를 통해서 회복된 나라는 모든 민족의 중심이 되고 이렇게 되는 것이 그들이 기대하는 메시야였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로마가 그것을 가만히 놔두지를 않습니다.
이전에도 많은 메시야 운동이 일어났을 때마다 로마 군인들이 그들을 정복했고 그럴 때마다 그들을 따랐던 유대인들이 비참하게 죽었는데 이제 만일 예수를 많은 사람이 따르니까 이런 메시야 운동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세력이 막강합니다. 그러면 로마가 처들어와서 이 민족을 멸할 것이 아니냐? 성소와 백성들을 멸해버릴 것이고 통치권을 전부 박탈해버릴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그들은 로마 황제를 두려워해서 예수를 메시야로 시인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도 유대인들은 말하기를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다고, 그렇게 해서 예수님을 놔주자는 빌라도에 대해서 압력을 가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그들이 결정한 결정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예수를 그들이 에시야로 시인하는 것보다는 로마의 권세 밑에서 그들의 삶을 유지하기를 더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권세에서 구원했습니다. 구약적인 개념으로는 모세가 그 당시 소위 메시야의 그림자가 되겠지요. 왜냐하면 그들의 구원자니까.그들은 모세를 따라서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런 큰 이적과 권세를 맛보고도 조금만 배가 고푸면은 우리가 바로의 종으로 있었을 때는 그 가마솥 곁에서 평안히 배부르게 먹었는데 우리에게 묫자리가 없어서 당신이 이곳까지 끌고왔는가? 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에 대해서 조금이라고 고난을 피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의 안일함이었습니다. 그러니 여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그들의 지도력을 발휘하고 그들의 평안이 유지되는 것을 바랐지 그들이 예수를 메시야로 시인하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얻도록 하는 것을 추구하지를 안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메시야됨을 거절한 것으로 그렇게 여기서는 우리에게 보도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수의 의견이 로마 황제의 권세 밑에 평안히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을 보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