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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바의 이론(1)

본문 말씀

요한복음 11: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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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한모금

"다수를 위해서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이 논리는 맞는 것일까, 틀리는 것일까에 대해 우리는 처음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논리는 가야바의 논리입니다. 그리고 “다수를 방치하면서라도 한 사람을 살려내는 일이 옳은 일이다” 이 논리는 바로 예수님의 논리입니다. 곧 아흔아홉 마리 양을 산에다 버려 두고 길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양을 찾게 되면,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 마리 양을 두고 더 기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가야바의 논리는 틀렸고, 예수님의 논리가 맞다고 쉽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가야바의 이 논리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뜻을 예언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가야바의 취지와는 다르지만 하나님은 다수를 위해, 곧 전체 인류를 위해 예수님 한 사람을 희생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야바의 논리를 사용하신 겁니다. 우리는 조금 전에 가야바의 논리는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야바의 논리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가야바의 논리가 틀렸다고 생각한 우리의 판단이 틀린 겁니까? 예수님의 논리가 틀린 겁니까? 문제가 대단히 복잡해졌습니다. 어떻게 이 미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세상 운동의 논리나 가치관은, 야바와 같이 나쁜 의도는 아니지만 가야바의 논리를 쉽게 선택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은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점에서 세상 운동의 가치관과 기독교 가치관이 결정적 차이를 지니는 겁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교회의 가치관의 차이입니다.

한 마리 양의 비유는 기독교 가치관의 핵을 이루는 내용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논리는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가야바의 논리를 사용하셨을까요? 게다가 왜 하필이면 반대 논리의 주인공인 예수님을 가야바 논리 사용의 제물로 삼으셔서 예수님을 부끄럽게 하셨을까요?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다. 그 한 사람이 타인일 경우에는 예수님의 논리가 맞고, 그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일 경우에는 가야바의 논리가 맞는다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이웃 중에서 누군가가 홀로 길을 잃고 헤매이고 있다면 열일을 제치고 그 한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겁니다. 다수의 이익이라는 명분 때문에 결코 그를 희생시킬 수 없다는 겁니다. 설령 다수가 조금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그 한 사람, 그 약한 사람을 구해내야 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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