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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속의 불신앙

본문 말씀

요한복음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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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한모금

마르다의 경우나 우찌무라의 경우나 똑같이 자신의 고백과 믿음의 차이를 드러내 보이는 모습입니다. 여러분들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또한 다른 사람에게서 일어난 놀라운 사건에 대해서는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믿으면서, 그런 일이 내게서도 일어날 수 있음에 대해서는 바람은 가지면서도 믿지 못하는 모습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합리적 사고를 한다는 것이 이렇게 엉뚱하게 우리를 비합리적으로 몰고 갑니다. 우리의 이성적 사고, 합리적 사고, 인간적 사고를 뛰어넘을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합리적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합리적으로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합리성을 버리고 하나님의 합리성과 만날 수 있을 때, 우리들의 믿음은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 고백과 일치하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런 믿음의 고백을 드릴 때, 비로소 "네 믿음대로 되리라"는 응답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각각 자신의 한계선 안에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에 마르다는 "예,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을, 내가 믿습니다."고 답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그리스도, 곧 구세주임을 고백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었으나, 죽은 사람마저 살려내시는 기적에 대해서는 예견하지 못했던 겁니다. 다시 말해서 그녀의 구세주에 대한 믿음의 범위가 좁았던 겁니다. 그녀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남을 믿었고, 또한 예수님을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얼마나 높은 믿음입니까? 하지만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다 포함하고 있지는 못했던 겁니다. 여전히 한계가 있었던 겁니다. 자신의 한계 밖에도 예수님의 능력은 존재했던 것인데, 아니 그 한계 밖에 있는 주님의 능력이 더 위대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 속의 불신앙이라는 모순이 있다는 것입니다.나의 한계성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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