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나사로가 아직 안죽었지만, 빨리(?) 죽기를 기다린다는 오해를 받을 만했습니다. 나사로는 끝내 죽었습니다. 죽도록 두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나사로를 죽음에 이르도록 두신 이유는 나사로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나사로의 가정이 겪는 고통이 대수롭지 않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의 목적하시는 바가 있었습니다. 그 목적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제자들에게 예수를 믿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렇다면 이 목적은 나사로를 통해 받으실 하나님의 영광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고통에 대한 몇 가지의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고통은 우리를 영원히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에 대해서 죽을 병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나사로는 죽었지만 죽을 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결론을 보아 우리는 다 알고 있지만 나사로는 죽음 가운데 영원히 묶어 두지 못했습니다. 옳습니다. 성도는 고통을 당하지만 그 고통이 성도를 가두어 두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고통 가운데서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의 고통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목적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목적 없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고통 가운데 버려 두지는 않습니다. 나사로 가 죽는 궁극적인 이유가 하나님의 선한 목적 때문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의 고통에는 언제나 열매가 있습니다. 봄에 농부들은 비지 땀을 흘립니다. 그러나 가을에 농부들을 보상을 받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목적의 열매는 반드시 거두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통 가운데 두시는 이유입니다.
40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40절) 우리의 고통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의 목적하심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고통이 지나고 열매를 거둔다는 말입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오해하지 맙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