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을 보라. 여인을 거듭나게 하신 예수님 앞에 먹을 것을 준비하여 나타난 제자들이 먹을 것을 권해 드린다. 그 때 예수님은 요4:32에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하신다. 이 주님의 말씀은 미련한 제자들에게 혼돈을 일으켰다. 요4:33을 보면,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드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양식을 구하러 간 사이에 주님의 양식이 해결됐다는 말인가?
궁금증이 더해 가는데 주님은 주님의 양식을 설명해 주신다. 그 양식은 다른 것이 아니다. 주님의 양식은 바로 나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사명인 것이다. 주님은 요4:37에서 자기의 양식을 사명으로 선포한다. 정말 주님은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삶의 모델이시다. 사람을 살리는 사명이 얼마나 분명했으면, 나 보내신 아버지 뜻을 행하는 것을 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칭 일꾼된 우리들이 땅만 보는 순간 예수님은 하늘도 본다. 육적으로만 생각하는 동안 예수님은 영적으로도 생각한다. 일꾼된 우리가 때론 시계에만 의지하는 동안 예수님은 시간의 얽매임에서 뛰쳐 나오시며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 내신다. 여기 여행 중에 피곤함을 느끼시고 목마름을 느끼시는 사람으로서의 예수가 하나님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이신 예수님이 이렇게 우리와 다른 차원을 가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