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가정교회는 교회와 건물을 상관적 관계로 이해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교회에 건물이 있고 없고는 신앙생활과 전혀 무관한 일이었습니다. 중국에도 온주지역과 같은 특별한 지역에는 지상에 거창한(?) 건물을 짓고 공개적으로 예배드리고 있는 가정교회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중국 내에 있는 가정교회들은 건물에 대한 뚜렷한 애착이나 미련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오직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아무 곳에서나 함께 예배드리며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으로 대단히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언제나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곳이 어느 곳이든 그곳이 바로 교회였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박해를 받게 되면 얼마든지 내일은 다른 곳으로 옮겨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교회가 정착돼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든지 주의 명령이라면 어디로든 과감하게 떠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중국의 가정교회가 드리는 예배는 이미 게릴라화 돼 있었습니다. 주님의 섭리는 중국교회에 임하는 박해를 전화위복시키시는 계기로 만드셨습니다. 교회의 중요성은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여 예배드리는 성도들에 있다는 변할 수 없는 경험을 소유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중국의 가정교회는 언제든지 복음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을 철저하게 드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