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상나눔터 | 정기구독신청 | 인쇄하기 |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나로 알게 하옵소서.”

[욥기 10:2]

오 곤한 영혼들이여, 어쩌면 주님은 지금 여러분에게 더 많은 은혜를 주시려고 여러분과 더불어 쟁변하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받는 은혜 가운데는 시험을 당하지 않으면 생전 발견할 수 없는 은혜들이 있습니다. 편안하고 좋을 때보다는 역경을 당할 때 믿음이 훨씬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랑은 주변이 캄캄할 때 외에는 그 빛을 발하지 않는 반딧불과 같을 때가 많습니다. 또 소망은 하늘의 별과 같아서 번영의 태양이 내리쬐고 있는 곳에서는 보이지 않고 오직 역경의 밤에만 보입니다. 이처럼 고통과 재난은 하나님이 자녀들을 위해 은혜의 보석들을 담아두는 검은 알루미늄 종이와 같을 때가 많습니다. 그 안에 싸여 있을 때 그 보석들이 더욱 광채를 발합니다.
여러분은 바로 얼마 전에 무릎 꿇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믿음이 조금도 없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제게도 믿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십시오.” 비록 무의식적이기는 하지만 사실 이것은 시련을 달라는 기도 아닙니까? 여러분의 믿음을 행사해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믿음이 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종종 시련을 보내십니다. 그것은 그 시련 가운데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발견하고, 그 은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증시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니, 우리는 그 시련 가운데서 단순히 은혜만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련을 이기고 나면 은혜 안에서 정말 성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다 나은 성도로 만드시기 위해 종종 우리가 누리고 있는 위로와 특권들도 앗아가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군사들을 훈련시키실 때 편안하고 사치스러운 텐트 속에서 시키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기서 쫓아내어 강행군과 고된 봉사를 통해 훈련받게 하십니다. 그들로 하여금 개울을 건너고, 강을 헤엄치며, 산을 오르고, 등에 무거운 슬픔의 배낭을 지게 한 채 아주 먼 거리를 행군하게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통과하고 있는 그 환난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받은 은혜를 분명히 드러내시고 그 은혜들을 자라게 하시려고 그런 환난을 허락하신 것 아닐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과 더불어 쟁론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시련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이 더욱 달콤하고
시련 때문에 기도 생활이 더욱 새로워지며
시련 때문에 내가 주님 발 앞에 엎드리게 된다.
주여, 저를 더욱 낮추시어 늘 그곳에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