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가롯 유다도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 역사에 쓰임 받은 사람이 아니었을까고(?)생각해 봅니다.그러나 그가 예수를 잡아주는데 협조하였기에 십자가에 죽게된 것이라면 그가 받는 정죄는 너무나 잔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전능하심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가룟 유다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길로 예비하신 방법으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룩하실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가룟 유다의 비극적 인생을 통하여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부르심의 소명이 모든 것을 다 책임져 주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후회함이 없는 소명임을 분명히 믿습니다. 그런 반면 우리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분명히 가룟 유다도 직접 제자로 부른 사람이었습니다. 기적과 아름다운 사랑의 현장을 경험한 자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배교자가 되고 지옥의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 가라고 했습니다.(빌2: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아직 구원을 다 이룬 것이 아니라 주 앞에 서는 날까지 깨어 있어야 할 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특히 히브리서 기자는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를 들어서 심각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히2:1-3『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그렇습니다.가롯 유다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도였습니다.그러나 기한 전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사울 왕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떨어진 열매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부르심의 소명을 헛되게 만들었습니까?그는 돈을 사랑하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다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가룟 유다의 이름이 등장하는 곳마다 이상하게 돈 문제가 함께 따라 다닌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9절에도 그를 돈궤 맡은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특별히 회계 일을 맡아볼 정도면 그는 머리가 잘 돌아갈 뿐 아니라 계산이 빠르고, 어떤 면에서는 돈에 무척 밝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마26:15) 그러자 대제사장은 그에게 은 삼십을 달아 주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예수를 팔아 넘길 기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은 삼십은 결코 큰돈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룟 유다는 그 정도의 액수에도 사랑과 믿음과 함께 자기 스승을 팔아 넘기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철저하게 돈의 노예가 되어 있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