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알아야 하는 핵심은 38년된 그 병자가 나았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적어도 이 말씀을 은혜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날이 안식일이니 아니니 하는 시비를 걸기에 앞서 38년 동안이나 누워 있다가 이제 일어나서 저기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그 모습을 은혜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때때로 은혜는 계율을 초월한다.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바로, 진정 사랑하는 사람의 실수는 실수로 보이지 않고 인간적인 매력으로까지 보이지 않는가?
즉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허다한 죄를 가리운다. 오늘 유대인에게도 그 병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만 있었더라도 그의 감격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었고, 안식일이 전혀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안식에 병을 고친 사건을 놓고 왜 시비했을까?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왜 일하느냐였다. 이때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셨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 5:17∼18) 이 말씀을 듣고 유대인들이 화가 났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라 했단다... 오~ 불상한 소경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