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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09일   
방언의 개인적 사용과 공적 사용
  / 고린도전서 14:14 - 14:19
 
 
방언의 한계
14 혹시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게 된다면 내 영은 기도하지만, 내 마음은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방언의 바른 사용
15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나는 영으로 기도하면서 마음으로도 기도하겠습니다. 또, 영으로 찬양하면서 마 음으로도 찬양하겠습니다. 16 그렇지 않고 여러분이 영으로만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거기에 참석한 초심자가 여러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여러분이 드린 감사에 “아멘”이라고 말하겠습니까? 17 여러분이 감사한 것 자체는 잘한 일이었는지 몰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덕을 세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공적 가르침에 써서는 안 되는 방언
18 나는 내가 여러분 중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방언을 말하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19 그러나 나는 교회에서 방언으로 만 마디를 말하는 것보다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다섯 마디를 말하기를 원합니다.
18 I thank God that I speak in tongues more than all of you. 19 But in the church I would rather speak five intelligible words to instruct others than ten thousand words in a tongue.
방언의 개인적인 적절한 사용
방언은 개인적인 영성 생활에 참으로 귀한 은사입니다. 그것은 마음(지성)에 매인 신자에게 영의 세계, 곧 지성과 논리를 초월 하시는 하나님께로 발돋움하게 해주는 트랜지스터와 같은 것 입니다. 하지만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마음(지성)에는 어떤 효과도 미치지 못합니다(14). 왜냐하면 방언으로 기도하는 내 용은 무슨 뜻인지 거의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같은 방언 은사를 잘 선용하는 자신의 방법에 대해 15절에서 소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방언으로도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도 기도하며, 방언의 찬양과 지식의 찬양을 병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성과 지성이 균형을 이룰 수 있게 하는 좋은 길입니 다. 우리는 바울처럼 영으로도 기도하고 마음으로도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방언을 바 르게 사용하고 있나요?
 
공적 모임에서의 방언은 자제
방언이 소중한 은사임에는 틀림없지만 바울은 그것을 공적인 집회에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고 가 르칩니다. 왜냐하면 누가 집회에서 방언으로만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면,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다른 회중 들은 그 감사에 아멘으로 화답할 수 없고, 그 결과 공동체 전체 에 덕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16,17). 이 때문에 바울은 자기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은 방언을 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지만 (18),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설교 등으로 사람들을 가르 칠 때는 만 마디의 방언보다 깨달은 지혜의 다섯 마디 말이 더 낫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통역할 수 없을 때에는 개인적인 기도에서는 사용하지만, 공적인 집회에서는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는 공적인 집회에서 방언을 절제하고 있나요?
 
은사를 나를 뽐내는 데 사용하지 않으며 오직 교회에 덕을 세우는 일에 사용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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