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에 보면 야곱이 그 동안 자기가 얼마나 수고했는지에 대해 외삼촌 라반에게 말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내가 이 이십년에 외삼촌과 함께하였거니와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 내었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 31:38-40). 그런데 우리 구세주는 이 땅에 계실 때 이보다 더 애쓰고 수고하며 사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하셨던 말씀-”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 하나도 내가 잃지 않았나이다”-처럼 끝까지 자기에게 맡겨진 모든 양떼들을 지키셨습니다. 그는 밤새 그의 백성들을 위해 기도로 씨름하시느라 주무실 틈도 없었습니다. 베드로를 위해 간구하시더니 또 금새 다른 일로 눈물 흘리며 중보 기도를 하셔야 했습니다. 불평하기로 마음 먹는다면 지금까지 차가운 밤하늘 아래서 별들을 쳐다보고 있던 목자 중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큼 불평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신부를 손에 넣기 위해 애쓴 그 수고는 어느 목자의 수고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저 차가운 산들과 한밤중의 공기가
우리 주님의 간절한 기도를 목격한 증인이요
저 사막이 우리 주님이 받은 유혹과
그가 겪은 갈등과 승리를 목격한 증인입니다.”
라반이 야곱 손에 있는 양떼를 모두 요구했던 사건과 비교해서 영적으로 한번 묵상해 봅시다. 그러면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양들이 짐승에게 물려 찢기면 야곱이 모두 보충해야 했습니다. 그 양들이 죽으면 야곱이 그 양 전체를 위해 보증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도 그의 교회를 위해 그처럼 수고하시지 않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믿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그의 손에 맡기신 하나님께 안전하게 데려가야 할 보증인으로 지내시지 않았습니까? 땀 흘리며 수고한 야곱을 쳐다보십시오. 그러면 그 안에서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사 40:11)라고 한 우리 주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