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이 낮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님을 향하여 친구라고 하는 것은 합당한 언어는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들 편에서는 우리가 어찌 주님을 향하여 친구라는 입장에서 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죄인입니다."라는 입장으로 주님 앞에 머리 숙일 때에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얼굴을 들으시며, 세상에 둘도 아닌 오직 하나밖에 없는 친구로 영접하시고 맞아주신다는 것입니다.(오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사랑이라는 것은 수평적일 때 진정 사랑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동정하는 사랑, 불쌍히 여기는 사랑이란 참으로 보기에 역겨운 것입니다. 모름지기 사랑이란 나와 같은 수준에 놓고 사랑해야 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나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했으니 내가 안 할 수 있으랴' 하는 식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은 사실 사랑이 아닙니다. 구제도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기는 하지만 사랑을 담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칭찬하면서 격려하면서 베푸는 사업은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고,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우리를 죄인으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다만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빌2:6-8『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말씀하셨습니다.우리와 같은 죄인의 모양으로 오신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수준으로 눈 높이를 맞추어 오셨습니다.내려오신 사랑이기에 예수님의 사랑, 우리 하나님의 사랑이 숭고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향하여 종이라고 하시면서 사랑한다고 하셨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종이 아니라 친구로 대하시며 바로 그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고 있는 것입니다.
주종관계는 믿을 수 없는 사이입니다. 그런 관계는 언제든지 배반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친구는 배반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 지신 것입니다. 지금 목숨을 버리신다는 말씀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실 것을 예고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12절 말씀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섰습니다.우리의 사랑은 믿음의 행위입니다.우리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우리는 일을 믿고 인정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받을 때만 기쁜 것이 아니라, 사랑할 때 더욱 기쁩니다. 내가 우리 주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좋아하였다면 주님으로 인하여 사랑하면서 기쁨을 나누어야 합니다. 예수의 사람들은 믿고 순종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 예수를 사랑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