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례 요한의 바른 신앙의 자세를 보면서 흐뭇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담대히 "회개하라!"고 외칠 때 세례요한을 오실 메시야로 착각할 정도록 인기가 상승했다. 그러나 그의 신앙 자세는 확실했다. 요3:29에서 요한은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 하였노라』했다.
우리는 간혹 주님의 양(성도)을 나의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 모든 것이 주의 것인데 나는 빈 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줄 알면서도 순간 다 내 것으로 움켜잡을 때가 없지 않았던가. 세례요한도 잠시나마 혼돈으로 주인공이 나타났는데도 같은 무대에서 물세례를 주고 있었다. 이것이 요한의 실수였다.즉시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요한을 옥에 가두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봤다.
신랑되신 주님만이 신부(교회)를 소유할 수 있다. 교회는 주님의 신부다.주님의 몸이다. 그러나 간혹 우리는 세례 요한의 실수를 범할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바른 신앙이란 바른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요구하고 계신다. 세례요한이 잠시나마 불투명한 선때문에 자기의 제자들이 "저 사람들이 왜 우리선생님께 안오고 저 선생님(예수)께 갈까?" 했던 것이다.